쩐의 전쟁 제 1 회 ( 05 월 16 일 )
씬1. 프롤로그
달리는 리무진 안.
말쑥한 정장차림의 나라,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차창 너머 도심 속 고층 빌딩들이 보통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리무진, 어느 고층 빌딩 앞에 선다.
똑같은 정장 차림을 한 사내들이 양옆에 죽 늘어서서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있다.
차에서 내리는 나라의 모습 슬로우로,
사내들 사이를 지나 빌딩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나라의 모습 슬로우로,
빌딩은 다름 아닌 돈으로 세운 건물이다.
나라
(싱긋 웃고 있는)
- 돈으로 세운 빌딩이 나라와 점점 가까워진다.
- 빠르게 움직이는 증권가의 모니터.
- 돈 빌딩과 점점 거리가 좁혀지는 나라의 걷는 모습 슬로우로.
- 빠르게 움직이는 성인 오락실 모니터.
- 나라와 더 가까워지는 돈 빌딩.
- 돈을 세는 여러 종류의 손들. 남자 손, 여자 손, 아이 손, 돈 세는 기계.
- 와르르 쏟아져 산처럼 쌓이는 동전들.
- 한 발 한 발 대딛는 나라의 발, 바로 나라의 코앞 까지 다가온 돈 빌딩.
- 로또 추첨, 숫자가 써진 공이 유리병 안에서 굴러가고 있다.
- 돌아가는 룰렛, 블랙 잭. 성인게임 ‘바다이야기’ 모니터.
- 오락실의 때리고 싸우고 하는 게임화면.
위의 화면들이 빠르게 교차된 뒤,
이제 빌딩 앞에 선 나라가 돈 빌딩을 보며 미소 짓고 서있다.
갑자기 미소 띤 나라의 얼굴 앞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위협적으로 지나가는.. 이어서 수십 마리의 비둘기가 푸드득! 일제히 하늘로 솟구친다.
비둘기들의 위협적인 날개 짓.
순간 돈으로 만든 건물이 침몰하듯 나라 앞에서 와르르 무너진다.
건물을 이루고 있던 돈들, 카메라를 향해 무섭게 돌진한다.
총소리 E 탕! 탕! 탕!
씬2. 클레어 사격장/낮
번쩍 눈을 뜨는 나라.
하늘로 깨진 피전 하나가 날아가고 있다. 꿈이었다.
사격장 뒤, 의자에 앉아서 잠이 들었던 나라.
탕! 탕! 총소리와 동시에 핑! 핑! 깨지는 피전.
앞에 차연이 총을 쏘고 있다.
나라, 차연의 뒤로 가서 살며시 차연의 허리를 감싼다.
차연
(미소) 깼어? 많이 피곤했나보더라.
나라
(차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꿈꿨어.
차연
무슨 꿈?
나라
.. 너랑 사랑하는 꿈.
엷은 미소가 생기는 차연. 타이밍을 놓치면서 지나가는 피전을 향해 쏘고 말았다.
나라
(보고 있다가) 미련 버려. 한번 지나간 표적은 절대 못 맞춰.
차연
(아쉽다.)
씬3. 경기도 일각 국도/낮
산과 산 사이로 시원하게 뚫린 길.
차연의 차가 달리고 있다. 차연 운전하고 있고 조수석에 앉아있는 나라.
나라의 전화벨이 울린다.
나라
(액정 보고 받으며)
네 어머니.. 지금 가고 있어요.
아뇨, 결혼식장으로 바로 갈 거예요. 안 늦어요.. (차연 보며) 네. 같이 있어요.
차연
(웃음기 있는 표정으로 잠시 고개 돌려 보는)
나라
네.. 네.. (폴더를 닫으며) 서두르라신다.
속도를 내며 달리는 차.
씬4. 예식 홀 입구/낮
나라 동생인 은지의 결혼식이다.
나라 부, 나라 모, 신랑인 영석이 입구에 서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나라 부,모
(하객들에게 인사하며) 오셨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석
(입가에 웃음 떠날 줄 모른 채 악수를 하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습을 드러내는 마동포와 수표, 전태. 세 사람 나라 부가 서있는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수표, 전태는 상가집에나 어울릴 법한 검은 양복을 입고 있다.
마동포
(거들먹거리며 상수의 어깨를 툭 치며)
금사장, 축하해.
나라 부
(바로 굳어진다.)
나라 모
(누군가 싶은데)
마동포
(히죽 웃으며) 야.. 따님 결혼시킬 돈은 있으시고,
빚 갚을 돈은 없으시다?
나라 부
(당황해서 마동포의 손목을 끌며) 저기 잠깐 만..
앞서서 마동포의 손목을 잡아끄는 나라 부. 거들먹거리며 따라가는 마동포와 수표, 전태.
나라 모,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서있다.
씬5. 동, 구석진 곳/낮
입구와 떨어진 소외되어 한적한 공간에 이르면,
나라 부, 마동포에게 고개를 조아리기 시작한다.
나라 부
사장님 저 좀 봐주세요. 오늘은 제 딸 결혼식입니다. 부탁합니다.
마동포
(비실비실 웃음만)
수표, 전태
(피식 피식 놀리는 듯한 웃음만)
나라 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합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씬6. 동, 주차장/낮
차연의 차가서고, 차에서 내리는 나라와 차연.
두 사람의 옷차림은 정장으로 변해있다.
나라, 차연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는 바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씬7. 동, 예식홀 입구/낮
환하게 웃으며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나라 모.
나라와 차연이 다가온다.
나라
(나라 모 옆으로 가서 서고)
차연
안녕하셨어요, 축하드려요.
나라 모
(반갑게) 어, 차연이 왔구나.
나라
아버지는요?
나라 모
글쎄 아까 손님이랑 가시더니...
나라
(두리번거리며 찾는)
나라 모
(차연의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 니들 먼저 보내야 하는 건데.
차연
저희도 얼마 안 남았는데요 뭐.
씬8. 동, 구석진 곳/낮
씬 5의 장소. 마동포가 나라 부의 엄지손가락을 가져다가 어느 서류에 억지로 지장을 찍게 하고 있다.
나라 부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
인서트
신체 포기 각서
마동포
(서류를 안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으며)
당신 오장육부는 이제 내꺼야. 명심해.
나라 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마동포
(수표, 전태에게) 우리 밥이나 먹고 갈까?
여기 뷔페지?
수표
갈비탕인 거 같습니다요.
마동포
(불만스럽게) 그래? 금사장, 갈비탕이야?
나라 부
...... (진땀 만 흘리고 있는)
떨고 있는 나라 부와 낄낄거리는 마동포 일행 뒤로 다가오는 나라의 모습이 보인다.
두리번거리며 아버지를 찾던 나라, 마동포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나라부를 봤다.
무슨 일이지? 나라, 다가간다.
마동포 일행, 나라가 다가오기 전에 몸을 돌려 한 쪽으로 사라진다.
나라
(옆으로 스쳐가는 마동포를 힐끗 보는)
마동포도 나라를 보지 못하는.. 수표와 전태에게 뭔가 속닥거리면서 간다.
나라, 연신 식은땀을 닦고 있는 나라 부, 에게 다가간다.
나라
아버지 저 사람들 누구에요?
나라 부
..어.. 거래처.
나라
(부친의 얼굴을 보곤)
긴장하셨어요? 왜 그렇게 땀을 흘리세요.
나라 부
아니다.. 가자..
나라 부, 나라와 함께 예식 홀 쪽으로 걸어간다.
수표와 전태가 멀리서 두 사람을 보고 있는.. 나라, 누군가의 시선 느끼고 돌아보면,
수표, 전태
(저들끼리 속삭이며 히죽히죽)
나라
...... (왠지 기분 나쁜)
씬9. 신부 대기실/낮
환하게 웃으며 앉아있는 은지.
나라와 차연이 은지에게 차례로 포옹해 준다.
나라
이쁘다.
차연
내가 본 신부 중에 제일 예뻐요.
은지
.. 고마워요.
차연
결혼, 정말 축하해요.
(E)
하객여러분, 곧 신랑 이영석군과 신부 금은지 양의 식이 거행되겠습니다.
씬10. 홀 내부/몽타쥬/낮
- 웨딩마치를 연주할 피아노 연주자가 피아노 위에 악보를 올려놓으며 앉는다.
- 주례석의 마이크를 톡톡 쳐보는 진행자.
- 나라 모, 영석 모가 양쪽 촛불에 불을 붙인다.
씬11. 동, 홀 입구 일각/낮
신부대기실에서 나오는 나라와 차연 위로 들리는 소란.
남자E
당신들 뭡니까?
나라와 차연,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면,
수표와 전태가 안내 테이블 앞에서 축의금이 든 봉투를 뺏어 커다란 천가방에 담고 있다.
수표
얘들은 우리가 접수한다고.
나라
(얼른 다가가서는) 당신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누구야? 당신들.
전태
(봉투를 가방에 넣으며) 우리? 제3 금융업.
나라
(무슨 소린가 싶어) 뭐라고요?
차연
(무슨 일인가 싶기만 한데)
나라 부, 튀어나와 수표와 전태를 부여잡는다.
나라 부
안 됩니다. 이 돈은 안 됩니다!
수표
(뿌리치며) 빚 갚는데 되는 돈 있고, 안 되는 돈 있어?
나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나라 부
정말 왜이러십니까, 이러지 마세요.
수표, 나라 부를 거칠게 밀어버리면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나라 부.
갑작스러운 소동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하객들의 비명소리.
나라 모
여봇! (부친을 일으켜 세우고)
차연
(놀란 눈으로 보고만 있는)
나라
(수표의 멱살을 잡으며) 뭐야, 니들 뭐하는 자식들이야?
수표
(얄밉게) 제3금융업에 종사한다니깐 그러네.
나라 부
(천 가방을 부여잡고 절규하는)
이건 안돼, 안 돼! 안 돼!
수표, 나라 부를 세게 밀어버리면, 내팽개쳐지는 나라 부.
참을 수 없는 나라가 수표에게 주먹을 날린다.
나라의 주먹을 맞고 휘청한 수표가 그대로 나라의 배를 가격한다.
나라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차연
악! 오빠! (나라에게 달려가는데)
나라, 차연이 달려오기도 전에 먼저 다시 수표에게 주먹을 날리지만,
그 주먹을 피한 수표, 다시 한차례 나라의 배를 가격한다.
다리가 꺾인 나라,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비명소리, 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다.
차연
(나라를 잡으며) 오빠.
고통으로 일그러진 나라의 시선으로 보면,
나라 부, 전태가 든 천 가방을 악착같이 잡고 놓지 않고 있다.
합세한 영석이 천 가방을 뺏으려 하자 수표, 영석과 나라 부의 배에 일격씩을 가하고는 그대로 뺏는다. 영석의 가슴에 꽂혀있던 꽃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짓이겨진다.
영석과 나라 부에게 달려가는 나라 모와 은지.
겨우 일어선 나라, 수표에게 있는 힘껏 주먹을 날린다.
고개 돌아가는 수표. 바로 다시 맞고 돌아가는 나라의 얼굴. 나라, 그대로 쓰러진다.
은지
오빠!
쓰러진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하는 은지. 나라 부와 영석도 한쪽에 쓰러져 있다.
수표와 전태, 은지의 드레스를 자근자근 밟으며 바닥에 떨어진 축의금봉투를 주워 천 가방에 넣는다.
은지의 드레스가 수표의 발에 자근자근 밟히다가 그대로 찢겨져 버린다.
중간 타이틀 뜬다. “ 쩐의 전쟁 ”
S#12. 까페 내부/ 오후 (- 상황, 대사 수정)
주희(E)
야, 이 나쁜 자식아!
모던한 분위기의 커피 전문점. 종업원과 테이블 손님들이 어느 한쪽 테이블을 주시하고 있다.
말끔하게 생긴 안경 낀 남자의 얼굴에 케익이 통째로 뭉개져있다.
카메라 빠지면 주희가 남자를 노려보며 빠르게 쏘아부친다.
주희
(분통 터지는) 내가 그동안 너한테 쏟아 부은 정성이 얼만데, 뭐, 이제 와서 헤어지자고!
남자
(담담하게 안경을 벗어 얼굴에 묻은 케잌 닦는다)..구질구질하게 이러지 말자.
주희
(남자의 뻔뻔함에 더 화가 난다)
그래 나도 더 이상 미련 없어. 미련은 없는데, 그동안 너한테 쓴 돈이 아까워 죽겠어.
너한테 사준 밥값, 책값, 차비, 고시원 방값 다 계산해줘. 은행이자 4.5% 쳐서.
(백 챙기며 일어서는) 내 계좌번호 알지?
남자
(안경을 닦아 다시 쓰며) 그래 그럼 다 끝난거지?
주희, 남자의 태도에 더 화가 나는 듯 가증스럽게 보다가 옆자리에 놓인 케잌 집어 들어 남자의 얼굴에 퍽- 던져버린다.
주희
이 케잌 값도 니가 내!
휙- 돌아서 나오는 주희의 얼굴에 점점 슬픔이 올라온다.
S#13. 건물 옥상/해질 녘 (-상황, 대사 수정)
붉게 해가 지고 있는 텅 빈 옥상.
주희,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벽에 기대 앉아있다.
주희
나쁜 자식! 사랑한다는 말이나 말지... 차라리 그깟 고시 콱 떨어져 버리지!
순간 지척에서 한 남자의 찢어질 듯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조철수(E)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수 있고 뜻하는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
주희, 노래 소리가 나는 모퉁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본다.
조철수가 옥상 난간에 아슬아슬 올라선 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주희
(놀라는)...!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 옆에는 조철수의 카트. (구겨진 이불, 종이박스, 각종 잡지(시사, 연예, 포르노)책들, 플라스틱 컵, 생수 병 등등이 들어있는) 가 놓여있다. 옆에는 빈 소주병.
조철수
(눈물 콧물 흘리며)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주희
(조철수에게 다가와서는)
아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조철수
(경계하듯 보며) 가까이 오지 마!
주희
아저씨..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이러시면 안돼요..(다가가서 잡으려는데)
조철수
(눈물 콧물) 아가씨가 내 사정을 뭘 알아! 죽던 말던 내버려 둬!
주희
(멈칫했다가 다가가며) 아저씨 그러다 정말 죽어요, 어서 내려오세요, 어서요!
조철수
(허공을 향해) 여보! 현비 엄마, 어딨어! 여보, 사랑해~ 현비야 미안하다~
씬14. 동, 건물 밑/해질 녘
싸이렌을 울리며 다가와 서는 경찰차.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일사분란하게 내리더니 그물망을 치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행인들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기 시작한다.
행동대원들 건물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간다.
반장
(메가폰으로 옥상위에 대고) 아, 아, 제 말 들리십니까. 들리십니까.
씬15. 동, 옥상/해질 녘 (- 상황 수정)
반장의 메가폰소리가 소음처럼 들리는 가운데,
주희가 조철수를 말리고 있는데, 이젠 설득조가 아닌 충고를 하고 있다.
주희
아저씨,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인 줄 아세요? 그래도 다 살아요.,식구들 생각해봤어요? 아저씨만 이렇게 달랑 가버리면요, 그럼 부인이랑 애들은 어쩌라고요, 네?
조철수
나 식구 없어, 다 도망갔어!
주희
살아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근데 아저씨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만나요.
조철수
싫어, 나 죽어버릴거야!
주희
(버럭) 나도 죽고 싶단 말이에요!
조철수
(‘엥?’ 놀라서 보는)..?
주희
일년동안 고시준비하는 애인 뒷바라지 해줬는데...오늘 그놈이 날 찼단 말이에요!
조철수
....저런, 죽일놈!
주희
(눈물 글썽) 당장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요..앞으로도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겠죠. 이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눈앞이 까마득해요..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조철수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주희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겨내야죠, 견뎌내야죠, 참아내야죠. 속터져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지만! (울컥한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지만! 흑흑-
조철수
(눈물 콧물 훌쩍이며) 울지 마요 아가씨..힘내..앞길 창창한 아가씨가..힘들어도 참고 살아야지...
주희
(눈물 닦으며)..아저씨도 내려오세요, 어서!
조철수
..그래..내가 잘못했어.
주희, 손을 내밀면.. 조철수 주희가 내민 손을 잡으려다 갑자기 휘청한다.
조철수, 중심을 잃고 양팔을 휘저으며 ‘어- 어- ’중심을 잡아보려고 버둥거리고..
주희, 놀라 조철수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데..
조철수, 주희의 손을 아슬아슬 잡지 못하고 악- 비명을 지르며 옥상난간 뒤로 넘어지듯 떨어진다.
주희, ‘엄마야!’ 놀라 손으로 눈을 가리며 주저앉는다.
옥상 아랫 편에서 박수소리가 들린다.
주희, 떨리는 가슴으로 천천히 옥상 난간 너머 밑을 조심스럽게 내려다본다.
에어매트 위로 떨어진 조철수를 119구급대원들이 구조하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주희,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다가 보면..난간 아랫 편에 벗어놓은 조철수의 낡은 구두가 보인다.
주희
(구두를 들어 난간 밑으로 던져주며)
아저씨, 신발은 신고 가셔야죠!
씬16. 나라의 집 내부/밤
강아지 메리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은지의 콩쿨 대회 수상 기념으로 피아노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위로 은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서럽게 울고 있는 은지. 나라와 나라 부, 모가 굳은 표정으로 모여 있다.
나라 부
은지야.. 결혼식은 다시 하자..
은지
(버럭) 됐어요! 결혼은 무슨 결혼, 창피해서 이젠 못해요, 못해.
나라
그만 좀 울어!
나라 모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은지
(울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라 부
......
나라
(무겁게) 아버지, 빚은 얼마나 지신 거예요.
나라 부
(고개를 들지 못하고) .. 미안하다.
나라
(화난) 대체 빚이 얼마나 되시냐고요!
나라 부
.. 한 오억 좀 넘는다.
나라, 나라 모
(놀라서 보는)
나라
사채 빚이 오억이 넘는단 말씀이세요?
나라 부
.. 은행 대출금까지 이것저것 합쳐서.
나라
지난번에 제가 대출 받아, 드렸잖아요.
나라 부
그나마 그거 갚아 여기저기서 대출받은 게 일억 좀 넘게 남고.. 나머진 사채 빚이다.
나라
(기막혀) 집 팔아도 안 되네..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나라 부
집은.. 벌써 전세로 돌려놨어.
나라 모
이 집이 전세라고요?
나라 부
.. 곧 이 집도 내줘야 될 거야.. 전세보증금도 그놈들이 가져갔어..
나라 모
(나라 부의 가슴팍을 치며)
왜 진작에 말을 안 했어요, 왜.. 이제 우린 어떻게 살라고
나라 부,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나라도 미치겠는 심정이다.
씬17. 중학교 운동장/밤
주경, 숨을 몰아쉬며 운동장을 돌고 있다. 하이힐에 핸드백까지 매고,
뒤뚱 뒤뚱 쓰러질 듯이 도는 주경,
중앙현관에서 나오던 인철, 뛰는 주경을 보고 미소 짓는다.
주경, 인철을 발견하고는 인철 가까이 온다.
주경
(숨을 몰아쉬며) 아, 숨차다..
인철
그 신발로 뛴 거야?
주경
앗! (얼른 신발 들어 구두 뒤를 본다.) 아, 이거 새신발인데...
인철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 우리 딸 애간장을 태운거야?
주경
아빠 어떻게 알았어?
인철
아빠가 왜 몰라. 너 3년 전인가 그때도 실연당하고 와서 운동장 빙빙 돌았잖냐. 짤막한 미니스카트 입고,
주경
아 맞다. (풋 웃는다.) 오늘은 실연 당한 거 아냐, 내가 찬 거야 아빠. 내가 먼저 일어났거든.
인철
(잠시 보다 등을 토닥여주며) .. 잘했다.
주경
나 또 잘한 거 있어. 오늘 내가 사람하나 살렸잖아.
인철
무슨 소리야?
주경
그런 게 있어.. 어떤 사람이 옥상에서 자살하려고 했거든.
인철
.. 그래서
주경
떨어졌는데, 살았어.
인철
다행이네.
주경
내가 그 사람, 신발도 챙겨줬어. 아마 맨발로 가진 않았을 거야.
씬18. 아파트 외부 일각/밤
인적이 드문 곳.
나라 부가 쭈그리고 앉아서 소주를 병째 들이마시고 있다.
나라
(뒤에서) 아버지.
나라 부
어.. (얼른 몰래 눈물을 훔치는)
나라
(흩어져 있는 소주병들을 세워놓으며)
..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요.. 안주도 없이.
(나라 부의 표정보고 마음 아픈데)
나라 부
...... (운 모습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 숙이고 있는)
나라
(옆에 앉으며) 아버지.. 너무 걱정 마세요.. 주식팔고 이것저것 하면 한 오천은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나라 부
아니다. 애비가 되가지고 너한테 잔뜩 빚만 떠안아 주게 됐으니...
나라
(아버지의 등을 감싸며) 아버지.. 가족이잖아요 우리.
나라 부
.. (희미하게 미소 짓는)
나라
아버지 혼자 아니에요.. 힘내세요.
씬19. 증권사 건물 앞/오전
나라,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씬20. 증권사, 사무실 내부/오전
오전의 부산한 사무실 풍경.
나라, 직원들에게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있다.
얼굴은 상했지만, 별 일 아닌 듯 아직까지는 당당하다.
나라
죄송합니다.. 어제 식사도 못하고 가시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팀장에게 가서) 팀장님, 어젠 정말 죄송했습니다.
팀장
(건들)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집에 빚이 많나봐?
나라
아 예..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시다 보니까.. 하하하.
팀장
(끄덕이고는) 그건 그렇고, 저 사람들, 누구야? 금나라씨 만나러 왔다는데.
나라, 팀장이 가리키는 쪽을 본다.
수표와 전태가 손님 접대용 소파에 앉아있다.
나라
(누구지? 하다가 알아보고는)
당신들,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수표
돈 받으러 왔수다.
나라
(기막혀) 뭐요?
수표
(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내 보이며)
어제 축의금이 생각보다 별로 안 들어 왔더라고. 1천8백50만원. 이자도 안 돼.
나라, 기가 막힌다.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들,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모두 나라를 지켜보고 있다.
나라
(사람들 향해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어보이고는 사내들 옆에 앉으며 작게) 당신들 뭐야, 깡패야?
전태
깡패라니, 제3 금융에 종사한다니까?
나라
깡패가 별건 줄 알아? 이런 게 깡패야.
(시선은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웃으며) 이봐요, 사채업자님들, 여긴 제 신성한 직장이거든요?
수표
보아하니 같은 업종이구만, 친하게 지냅시다, 우리.
나라
(기가 막히고)
CUT TO :
나라, 증권분석을 하는 듯 컴퓨터 단말기를 보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수표와 전태가 나라 앞으로 고개를 불쑥 내민다.
수표
요즘 무슨 종목이 떠?
나라
(구겨지는데)
전태
종목 좀 찍어줘 봐..
(수표에게) 근데 형, 주식이거 위험하지 않아?
수표
그럼, 사채가 백번 안정적이지.
나라
(미치겠는)
씬21. 동장소 구내식당/낮
나라와 팀장이 밥을 먹고 있다. 두 사람 앞에 놓이는 식판.
나라 보면, 수표와 전태다.
수표, 전태
(동시에 팀장에게) 많이 드십시오.
팀장
(탐탁치 않은 듯) 아, 예..
나라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는)
수표, 일부러 반찬을 와작와작 씹어 먹는다.
전태는 국을 후루룩 소리 내서 마시고.. 팀장, 불쾌한 듯 식판을 들고 일어나간다.
나라
(쏘아보는)
씬22. 화장실 내부/오후
나라, 변기 앞에 서서 볼일을 보고 있는.. 수표와 전태가 들어오더니 나라를 사이에 두고 서서는 볼일을 본다.
나라
당신들 개야? 왜 하루 종일 졸졸 쫓아다녀?
수표
돈을 줘야 가지 새끼야.
나라
가져갔잖아 새끼야.
수표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치며)
당신이 계산이 잘 안되나 본데, 내가 계산을 해줄게. 당신 아버지가 갚아야 할 돈이 현재 4억이야.
이자가 연 60%니까, 매달 5%씩,
한달에 2000 만원을 주면되는데, 이게 복리야. 그러니까 당신이 이달 2000만원을 안주면
다음달엔 원금 4억에 이자 4100만원이 되는 거고, 그 다음달엔 4억 6350만원이 되는 거거든?
빨리 갚을수록 돈버는 거야.
나라
야, 니네들 정말 돈 쉽게 버는구나..
나도 좀 배워보자 어디, 도둑놈의 새끼들.
수표
도둑? 도둑은 돈 가져가서 안 갚는 게 도둑이야, 새끼야.
수표 손가락으로 나라의 이마를 톡톡 치고는 쏘아보고 나간다.
나라
(솟구치는데)
팀장
(칸막이 안에서 나오며) 저 사람들 대체 누구야?
나라
.. 아 예.. 제 보디가듭니다.
팀장
보디가드? (어이없다는 듯이)
자넨 사채업자들을 보디가드로 쓰나?
펀드매니저가 사채 썼다는 소문나면 이 바닥에서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회사이미지는 또 어떻고! (나간다.)
나라
...... (굳는)
씬23. 증권회사 앞/저녁
나라, 차연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오고 있다.
나라
어, 차연아.. 지금 가고 있는데..
약속을 좀 미루면 안 될까?
... 그래 알았다.. 지금 갈게..
어 뭐 큰 일이 있는 건 아니구.. 알았다.
하다가 앞을 보면, 수표와 전태가 길을 막고 서있다.
수표
(히죽 웃으며) 어느 빚진 놈은 데이트 하고,
돈 받을 놈은 빚진 놈 쫓아다니느라 데이트도 못하고,
나라
내가 분명히 말해두는데, 난 우리 아버지가 진 빚 갚을 법적인 의무 없어, 알아?
수표
법 좋아하시네.. 넌 공자님말씀도 모르냐?
부모님께 효도해라. 니 애비가 빚을 졌으면 자식 놈인 니가 갚는 게 당연하지,
(나라의 뺨을 툭툭 치며) 이 호러 자식아.
나라
이 새끼가! (바로 주먹을 날린다.)
수표가 넘어지자 전태, 바로 나라에게 주먹을 날린다.
나라도 바로 전태에게 주먹을 날린다. 서로 뒤엉키면서 주먹을 주고받는 세 사람..
나라의 핸드폰이 떨어지면서 밧데리가 멀리 빠져버린다.
나라, 악에 바쳐 수표와 전태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는..
씬24. 한정식 집 내부/저녁
전화를 걸고 있는 차연, 봉여사가 마주 앉아있다.
E
전화기가 꺼져있으므로...
차연
(폴더를 닫으며) 일이 생겼나 봐요. 워낙 바빠요.
봉여사
그놈 시간은 금쪽이고 내 시간은 개쪽이야?
차연
(웃으며) 할머니이.. 금방 올 거예요.
봉여사
다음에 보자. (일어서 나간다.)
씬25. 한정식 집 앞/저녁
한정식 집에서 나오는 봉여사와 차연.
차연
(봉여사를 잡으며) 할머니 잠깐만요.
차가 다가온다. 우성이 안에서 내린다.
봉여사
가지 하이사.
우성
네
일각에 택시가 서고 안에서 내린 나라가 급하게 다가온다.
나라, 머리와 옷차림이 헝클어져 있다.
차연
(굳어졌던 얼굴이 펴지며) 할머니 왔어요.
우성
(뛰어오는 나라를 보는)
나라
(다가와 이미 차에 오른 봉여사 앞에 허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봉여사
(창문만 내린 채)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시간 개념이 없어.
나라
죄송합니다.
봉여사
다음에 다시 보세.
나라
.. 네. (기분 살짝 상했다.)
우성
(나라를 보고 있는)
나라
(우성 보는)
우성, 갑자기 차연 앞에 가서 무릎을 꿇는다.
차연
(놀라는데)
우성
발찌가 풀리셨습니다.
우성, 차연이 차고 있던 고리가 풀린 발찌를 조심스럽게 채워준다.
나라
(그런 우성을 보는)
우성, 차연에게 엷게 미소 보이고는 봉여사 옆에 앉는다. 출발하는 차.
차연
왜 이렇게 늦었어. 옷차림은 또 왜이래, 무슨 일이야.
나라
어, 별일 아냐.. 그냥 일이 좀 있었어..
(가는 차를 보며 불쾌한 듯) 근데, 저 놈 누구냐?
차연
어, 우성씨.. 할머니 사업의 핵심 브레인.
나라
(마땅치 않은)
씬26. 거리/차안/저녁
기사, 운전하고 있고 봉여사와 우성이 나란히 앉아있다.
봉여사
사람 시켜서 좀 알아봤어?
우성
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에 직업은 펀드매니접니다. 현재 증권사에서 일하고 있고요.
봉여사
(끄덕이며) 인물도 괜찮고.. 집안은.
우성
.. 요즘 아버지가 사채 빚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봉여사
사채?
우성
네. 요즘 꽤 힘든 상태라고 합니다.
봉여사
누구 돈을 썼는데?
우성
남대문 마사장님 돈인 것 같습니다.
봉여사
지독한 놈한테 걸렸구만.. (냉소적으로 피식 웃는다.)
씬27. 포장마차/밤
나라와 차연이 마주 소주를 마시고 있다.
나라
(술잔을 털어 넣고 있는)
차연
약혼식을 미루자고?
나라
.. 어제 다 봤잖아, 당장 약혼하기 힘들겠어..
은지도 결혼식 다시 해야 되고.
차연
겨우 돈 때문에 약혼식을 미루자는 거야?
대체 빚이 얼마나 되는데?
나라
(기분 상해서) 그래 겨우 돈 때문이다.
왜? 니가 갚아주게?
차연
갚아줄 수도 있어.
나라
(어이가 없어) 잘난 척은.
차연
(기분 상해서 본다.)
나라
하여간에 사채업 하는 놈들은.. (술 마시는)
차연
사채업자라고 다 같은 사채업자 아냐.
싸잡아서 욕하지 마.
나라
(비위 상해) 그러시겠지, 너희 할머닌 다르시겠지.
차연
(기분 상해서) 오늘 좀 예민하네?
나라
(쓰게 웃으며) .. 미안하다. 내가 오늘 좀 그렇다.
차연
돈 필요하면 말해. 빌려줄 테니까.
나라
(빈정거리는) 또 사채를 쓰라고?
차연
(차갑게 보는)
나라
더 이상은 사채 안 써.
차연
오늘 우리 참 말 안 통한다.
어색해지는 두 사람. 두 사람, 술잔만 털어 넣는다.
나라
가자. 시간도 늦었는데...
(먼저 일어서면서) 아줌마, 얼마에요.
차연
(서운하게 보는)
씬28. 마동포 사무실/밤
마동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돈 다발을 세고 있다.
수표, 소파 맞은편에서 마동포의 눈치를 살피며 지켜보고..전태는 퇴근한 경리아가씨 책상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다.
마동포
(계속 돈 세며) 금사장, 그놈이 연락이 안 된다?
수표
며칠 째 집에도 안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들놈만 쫓아다니고 있는데, 솔직히 더 나올 구멍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전태
그 성깔도 만만치 않더구마안~
마동포
(구겨지며 보는) 이런 한심한 놈들. 돈이란 건 쥐어짜면 다 나오게 돼 있어! (전신거울 앞으로 가서 몸을 흔들며 지루박 스텝을 밟는다. 몸을 빙그르르 돌리면서) 야, 여기도 옛날에 댄스장이었는데 내가 접수한 거야, 짜식들아.며 보는) 이런 한심한 놈들. 돈이란 건 쥐어짜면 다 나오게 돼 있어!
씬29. 무료 배급소/오후
식판을 든 줄을 서서 무료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무리들 속에는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밥을 먹고 있다.
마동포,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순간 누군가가 마동포의 뒷통수를 세게 후려친다.
마동포
(비명이 나올 정도로) 억!
돌아보면, 독고 철이다.
독고 철
야 이놈아, 너 아직도 여기서 이렇게 사람 섭외하고 다니냐?
마동포
(아프다/뒤통수 문지르며)
형님은 아직도 여기서 공짜 밥 먹습니까?
독고 철
(한대 더 때리며) 같은 놈 취급하지 마, 이눔아.
넌 아직도 남 피 빨아 먹고 살지? 난 아냐 임마.
마동포
(인상 쓰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독고 철
니놈이 그건 알아서 뭐하게.
오늘 우거지 국 괜찮더라. 밥이나 먹고 가라.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독고 철.
수표
(옆에서 보고 있다가) 저 노인네 누군데 형님을 그렇게 때려요?
마동포
저 노인네? ..전설적인 인물.
전태
누군데요?
마동포
있다. 그런 사람이.
마동포, 다시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노숙자 사이에 낯익은 신발이 하나 보인다.
주경이 던져준 신발, 신발을 따라가 보면 조철수가 의자에 책상다리 하고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 머리며 온 몸이 꼬질꼬질하다.
마동포, 수표에게 조철수를 찍어준다.
수표
(조철수에게 다가가) 당신,
조철수
(보면)
수표
알바 하나 할래?
조철수
(무슨 소린가 싶어) 네?
전태
돈 좀 벌어보겠냐고.
조철수
제, 제가요?
불쑥 옆에 있던 노숙자가 나선다.
노숙자1
(손 번쩍 들고) 제가 할게요. 제가, 그 알바 제가 할게요.
여기저기서 노숙자들이 ‘제가 할래요!’ ‘저요!’ ‘저요!’ 하면서 손을 드는,
조철수
(목청껏 큰 소리로) 저요!
씬30. 나라의 집/밤
들어오는 나라, 현관문을 여는데 강아지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나라
(굳어지는)
거실에 지저분한 옷차림의 조철수가 누워서 온 몸을 벅벅 긁고 있다.
한쪽에는 수표, 전태가 자장면을 시켜서 먹으며 티비를 보고 있다.
은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방에서 튀어나오며) 오빠!
은지의 품에 안긴 강아지가 거실에 있는 낯선 이들을 보며 연신 짖고 있다.
나라
(거실의 풍경을 보고 어이가 없는)
은지
저 사람들 아까부터 저러고 있어.
철수
(나라를 보고 히죽 웃는다.)
나라 모
(방에서 기운 없는 목소리로) 왔니?
나라
좀 어떠세요. 병원에 좀 다녀오시지 그러셨어요.
나라 모
병원은 무슨.. 아버지 연락 없었니?
나라
네..
나라 모
(거실에 있는 세 사람 보고) 저 사람들을 어쩌면 좋니 그래. 무서워서 신고도 못하겠고...
나라
(싸늘하게 보곤) 은지랑 방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CUT TO :
나라, 강아지를 안고 조철수, 사채업자와 나란히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다.
나라
(해볼 테면 해봐라 하는 마음)
티비를 보는 나라, 평소보다 더 큰 소리로 웃는다.
수표
(나라가 못마땅한) 아버지 언제 오시니?
나라
(대답 않는)
전태
언제 오냐니까?
나라
(대답 대신 강아지를 바라보며) 멍! 멍!
수표
(구겨진다.)
철수
아, 따뜻하니 좋다. (잘 태세로 벌러덩 눕는다.)
수표
아비가 돈이 없으면 자식 놈인 니들이 갚아야지.
나라
멍,멍, 멍멍멍!
수표
(험악하게 굳어지며)
야, 너 내가 하는 말이 개소리로 들려?
나라
(강아지 얼굴에 바짝 얼굴을 대고는) 크르릉~ 멍멍!
메리도 따라서 멍멍 한다.
수표, 전태
(완전히 굳어지는)
나라, 힐끗 수표를 본다. 사실은 무섭다. 팔뚝에 힐끗 보이는 문신.
나라
(티내지 않고) 나한테 뭐라고 하셨수?
수표
(싸늘하게 바라보는)
나라
아, 내가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보네.
(강아지를 보며) 그치 메리야~ 멍멍!
씬31. 나라 집 전경/오전
은지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은지E
악!
씬32. 은지의 방/오전
침대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은지, 조철수가 웃통을 벗은 채 침대 옆, 바닥에서 자고 있다.
은지
아- - - 악!
철수
(잠에서 깨어나 무슨 일이지? 하는 표정을 짓는)
나라와 나라 모가 달려 들어온다.
나라
(철수를 보며 사태 짐작하고 다짜고짜 멱살을 잡으며) 이 새끼가!
철수
아니.. 자다가 거실이 너무 추워서요.. 중앙난방이에요? 밤에는 불 안 들어오네...
씬33. 동, 거실 현관 앞/오전
화가 치민 나라, 조철수의 멱살을 잡고는 현관 쪽으로 질질 끌어낸다.
철수
왜이래요.. 아, 아.. (엄살을 피며 끌려가는)
수표E
왜 그래?
나라 모와 은지, “악! ” 하고 비명부터 지른다.
수표와 전태가 샤워를 했는지 허리에 수건만 두른 채 서있는데,
두 사람 등에 새겨져 있는 문신이 살벌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둘이 합쳐서 용문신. 수표는 머리 쪽, 전태는 꼬리 쪽이다.
나라 모
(기막혀) 이 양반들이 정말, 이봐욧! 그러고 어딜 돌아다녀!
나라
(문신 보니 어이가 없고)
철수
(그 틈을 타서 얼른 거실로 기어간다.)
씬34. 몽따쥬
- 통장 잔고가 점점 줄어든다.
- <7,240,234>에서 <3,567.123> <734,000>에서 <45600> 이 되는 모습 디졸브로.
- 심난한 표정의 나라가 사이트에서 주문 체결을 클릭하고 있다.
- <매매 하시겠습니까?> YES에 클릭 한다.
- 좌르륵 소리와 함께 현금지급기에서 돈이 나오는 소리.
- 현금서비스 잔액 <0> 이다.
- 나라, 수표와 전태에게 돈 봉투를 준다. 봉투에서 돈을 꺼내 세는 수표.
- 경멸하듯 바라보는 나라.
씬35. 증권사 건물 앞/낮
나라, 전화통화를 하면서 내려오고 있다.
나라
(고객과의 통화) 아뇨, 그거는 안 파시는 게 좋습니다. 그럼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금융주가 원래 그러찮아요.
E 수신대기 통화음.
나라
잠깐만요, 전화 하나만 받고요..
(버튼 눌러) 네 엄마, 아버지 연락 왔어요?
.. 너무 걱정 마세요.. 엄마, 저 통화 중이었어요..
E 수신대기 통화음
나라
(버튼 눌러) 여보세요. .. 네? 아, 대출금이요..
그게 상환날짜 가 오늘 이었나요? 알겠습니다. (끊으며 심난해지는데)
팀장
(뒤에서) 금나라씨.
나라
(돌아보면)
팀장
(마땅치 않게) 바쁘네 아주.
나라
(불쾌해지는데)
팀장
저기, 나 삼만 원 만 빌려주라. 택시 타야 되는데 잔돈이 없어서 그래.
나라
... (싫은)
지갑을 연다. 딱 삼만 원이다.
나라
(잠시 망설이다가 주면)
팀장
점심 맛있게 먹어.. 아, 조 옆에 샤브샤브 집 괜찮더라. (택시를 타고 가버린다.)
나라
(중얼거리는) 샤브샤브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E 나라의 전화벨소리.
인서트
액정에 뜨는 <아버지>
나라
(받으며) 아버지, 어디세요?
나라 부F
나라야 미안하다.
나라
(갑자기 짜증이 오른다.)
그 얘긴 그만하시라고 했잖아요.
씬36. 한적 한 곳 공중전화 부스 안/낮
나라 부, 전화를 하고 있다.
나라 부
나라야.. 네 이름이 왜 금나란 줄 알지?
(설핏 미소) 내가 하도 가난하게 살아서..
내 아들 만큼은 이 나라에서 제일 큰 부자 되라고.. 그래서 내가 나라라고 지었다.
씬37. 증권사 건물 앞/낮
나라
(전화통화/짜증스럽게) 지금 어디계시냐고요.
나라 부 F
나라야 미안하다.. 나라야 나만.. 나만..
멀리서 자동차 클락션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나라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쪽을 보는데)
씬38. 공중전화 부스 안/낮
나라 부
(전화기에 대고) ..나만 없어지면 우리 식구는 살 수 있다.
씬39. 증권사 건물 앞/낮
E 계속 울리는 클락션 소리.
나라
.. 네? 아버지 뭐라 그러셨어요? 잘 안 들였어요. (아무 대답이 없다.) 아버지, 제가 잘 처리할 테니까요 아버진 당분간 숨어 계세요.. 아셨죠? (대답이 없자) 아버지?
나라, 잠시 끊긴 전화기를 바라본다.
씬40. 공중전화 부스 안/낮
부스 안의 빈 공중전화기, 급히 끊은 듯 전화기가 비뚤게 놓여 있다.
씬41. 절/낮
서울 근교에 있는 아담한 절.
나라 모가 절 마당가에 있는 연못 속의 불탑에 동전을 던지며 연신 허리를 숙이고 있다.
나라 모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지미 사바하.. (다시 동전을 던지고 허리를 숙이며)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불상 앞에 던져지는 동전.. 쌓이는 동전들.
씬42. 나라의 집 앞/오후
수표와 전태가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밖으로 내놓고 있다.
은지, 끝까지 “ 왜이래요!” “가만 두지 못해요!” 하면서 매달리고 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다.
나라 모
(기운이 빠진 듯 멍한 표정이 되어 한쪽에 앉아있다.)
마동포
이봐,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전세 계약서를 보이며) 금사장이 전세금을 담보로 했다니까? 주인이 돈을 내주지 못한다니, 어떻게, 당신들이 나가고 새사람들이 들어와야지, 그래야 내가 돈을 받을 거 아냐, 상식적으로다.
은지
(울먹이며) 나쁜 놈!
마동포
이런 나쁜 기지배를 봤나..
야, 내가 너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많은 줄 알아?
이 집 식구들 진짜 말 귀 못 알아 쳐 먹네..
야, 다 내놨으면 가자.
마동포가 수표, 전태와 함께 간다.
집을 향해 걸어오던 나라, 마동포와 수표, 전태를 본다.
마동포, 주차하고 있던 차에 오른다. 나라, 설핏 마동포의 옆모습을 본다.
출발 하는 차. 수표가 차안에서 나라를 보고는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라
! (불길한)
빠르게 뛰어가는 나라. 집 앞에 살림살이가 나와 있다.
나라
(사태 파악된다.) 제가 집 알아볼게요..
당분간 여관에서 지내면 되요..은지야 다 버리고 간단한 짐만 챙겨, 나머지는 이삿짐은 쎈터에 맡겨두면 돼.
나라 모
(염주를 돌리며 한숨쉬는)
은지
오빠 피아노는?
나라
못가지고 가.
은지
싫어, 가지고 갈 거야.
나라
(버럭) 피아노 들어가는 집을 어떻게 구해! 팔아버려!
은지
싫어! 피아노는 안 돼, 절대 못 버려!
나라 모
(버럭) 그만들 못해! .. 그만들 해.. 그만 들.. 아버지도 없는데.. 니들마저 소리치고 싸우면.. 엄마는 속상해서.. 속상해서.. (옆으로 스르르 쓰러진다.)
나라, 은지
엄마! 엄마!
씬43. 응급실/밤
똑똑 떨어지는 링거 줄 따라 내려가면, 간호사, 나라 모의 팔에 혈압재고 있다.
산소마스크 씌워있는 나라 모. 의식이 없다. 나라와 은지, 굳은 얼굴로 옆에서 보고 있다.
간호사, 팔뚝에서 혈압기 풀며 혈압 체크하고, 겨드랑이에서 체온기 빼서 확인하고,
심전도 모니터 보고 차트에 기록하고 간다.
나라
......
은지
오빠.. 엄마 어떻게 되는 거야?
나라
걱정 마. 가벼운 뇌출혈이라니까 수술만 하시면 돼.
은지
.. 오빠, 우리 엄마 수술비 있어?
나라
마련할 수 있을 거야.
은지
오빠 미안해.. 피아노 때문에.. 정말 미안해.. (울먹인다.)
나라, 살포시 은지의 어깨를 감싼다. 모친을 보고 있던 눈이 붉어지는..
나라, 치미는 분노를 겨우 삭이고 있다.
씬44. 은행 건물 화장실/낮
주경, 거울을 보면서 스마~ 일 연습을 하고 있다.
주경
(활짝 웃으며) 스마~ 일.
현정
(들어오다가 보고) 뭐해?
주경
이 달의 스마일 상, 타려고..
(거울을 보며) 스마~ 일. 상금만 해도 십 만원이래.
현정
(안됐다.) 쯧쯧..
주경
왜 혀를 차?
현정
불쌍해서.. 남자한테 차인 시련은 스마일로 극복하는 게 아냐, 사랑으로 극복하는 거야.
주경
상 타면 상금 생기잖아. 돈으로 극복하면 되지 뭐.
현정
너무 돈돈 하지 마라. 꼭 돈 없어서 차인 애 같으니까.
주경
(덤덤하게) 맞아.
현정
어?
주경
나 가난해서 차인거야. (슬픈 미소) 스마~ 일.
씬45. 은행 내부/낮
자리에 앉은 주경, 다가온 손님을 향해 연습한대로 환하게 웃어 보인다.
주경
(과장되게 스마~일 하고는) 어서 오십시오 손님.
나라E
은행이 뭐하는 곳입니까 대체!
주경
(소리 나는 쪽을 보면)
나라가 대출계에 앉아있는 현정을 향해 소리를 치고 있다.
나라
은행이 돈을 안 빌려주면, 나더러 사채라도 쓰란 얘깁니까?
현정
손님, 말씀드렸잖습니까.
손님께서는 이미 받으신 대출도 있고,
보증인도 없고.. 담보도 마땅히 없으시니
주택 대출도 받으실 수가 없고..
나라
(자르며) 내가 담보고, 내가 보증이야!
(화가 풀리지 않다는 듯이 휙 돌아서는데)
나라와 주경, 서로 시선이 마주친다.
주경
(애써) 스마~일~
나라
(무표정하게 보고는 나가버리는)
주경
(무안해지는데)
지점장E
서주경씨.
주경
네!(돌아본다.)
지점장이 VIP룸 앞에서 와보라고 손짓한다.
씬46. 은행 내부 VIP룸/낮
들어오는 주경, 지점장과 마주 앉아있는 인혁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인혁
(미소)
지점장
강사장님께서 서주경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겠대.
인혁
서주경씨, 평소에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주경
별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할 일인데...
손님은 저희 은행의 에이스 골드, 고객이시잖아요.
인혁
하하.. 듣기 좋네요. 에이스 골드 고객. 이거 계속 골드대접을 받으려면 돈을 많이 예치해야 되나요?
지점장
그래주시면 저희야 좋죠, 하하하
인혁
제가 실례가 안 된다면.. 지점장님 하고 서주경씨 한테 저녁을 좀 사고 싶은데, 어떠세요.
지점장
아유.. 우리가 사야죠..
인혁
서주경씨 언제 시간 한번 내주세요.
주경
(뼈있는 농담) 지점장님께서 시간외 근무로 쳐주시면요.
지점장
(흘겨보면)
인혁
(주경을 보며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하..
주경
(사무적으로 스마~ 일 해 보인다.)
씬47. 은행 내부/낮
지점장과 주경, 나가는 인혁을 문 앞까지 배웅하고 있다.
주경
(자리에 와서 앉는데)
현정
(옆으로 와서) 강사장이 왜 부른 거야?
주경
니 말이 맞더라. 강사장 나한테 딴 맘 있나봐.
현정
(호들갑스럽게) 것 봐 것 봐.. 내가 뭐랬어.
돈 많어, 잘 생겼어. 이혼했다는 게 좀 그렇지만.. 생각하기 나름이야, 경험많으면 좋지 뭐..
주경
(어이없다는 듯이)
정신 차려라. 나 이제 남자 안 믿거든?
현정
그럼 누굴 의지하고 살려고.
주경
돈. 남자는 상처를 남기지만, 돈은 이자를 남기잖아?
씬48. 증권사 건물 옥상/낮
높은 빌딩 숲들을 바라보며 서있는 나라,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고민 하고 있다.
나라
(결심한 듯 전화를 걸고는)
아, 나야.. 잘 있었어? 그럼, 잘 있지..
(애써 웃으며) 하하하! 저기, 내가 시간이 없어서 빨리 말할게. (당당하게) 야, 돈 좀 꿔주라..
그래? 아니, 괜찮아. 그래 다음에 연락하자.
(굳은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잠시 미동 없이 앉아있던 나라, 다시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나라
나다. 오랜만이지? 잘 있지 그럼.. 하하..
(여전히 당당하게) 야, 너 요즘 돈 좀 있냐?
CUT TO :
나라
(수그러진) 내가.. 급히 돈이 필요해서 그래.. 알지, 니 형편, 아는데 어떻게 좀 안되겠냐?
CUT TO :
나라
(사정조로)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어..
은행 대출 받을 수 있으면 내가 이러겠냐.. 부탁한다. 어머니가 당장 수술하셔야 되서 그래...
CUT TO :
날이 어둑어둑 해지고 있다. 굽은 나라의 등 뒤로 지는 노을.
나라
(애원하고 있는) 내 바로 갚을게.. 응?
내가 사정할게... 어떻게 안 되겠냐?
CUT TO :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멀리 야경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나라
(굳어진 표정으로 그 불빛들을 보고 있는)
나라의 시선에 불빛이 점점 흐려진다.
나라, 입을 앙다물고 폭발할 것 같은 것을 참고 있다.
씬49. 증권사 건물 내부/밤
들어서는 나라.
팀장E
금나라씨.
나라
(돌아보고는) 예.
팀장
(짜증스럽게) 하루 종일 어디에 있다 와?
그런 식으로 일할 거면 당장 그만 둬!
나라
(굳어지는)
직원들 모두 나라를 보고 있다.
팀장
(짜증스럽게 중얼거린다.)
정신을 어따 두고 다니는 건지..
금나라씨, 보아하니까 정신 차리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차라리 관두는 게 났지 않겠어? 어?
소문 더 나빠지기 전에, 좀 쉬다가 다른 데로 옮기는 게 어때?
나라
(화난)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팀장님.
팀장
뭐라고?
나라
퇴직을 하든 이직을 하든, 그건 제가 결정합니다.
팀장
자네 정말 정신 못 차렸구만. 자네 고가를 누가 주는데? 자네 그 사채 썼다는 소문 때문에 투자자들한테서 얼마나 전화통이 불나는 줄 알아! 그것 때문에 손해가 얼만데!
나라
소문을 잘못 들으셨군요. 전화통이 불나는 이유는, 팀장님이 운영하고 있는 펀드3호가 손실이 크니까 그런 겁니다. 아세요?
팀장
뭐? (솟구친다.) 너, 당장 짐 싸. 내일부터 나오지 마, 알았어? 내가 책임지고 잘라 줄게. 어디서 감히!
팀장, 가방을 챙겨가지고 나가는..
굳은 표정으로 보던 나라, 팀장을 따라간다.
나라
팀장님.
팀장
(돌아보며 버럭) 왜. 뭐 할 말 있어?
나라
지난번에 저한테 빌려 가신 돈 주세요.
팀장
뭐?
나라
저한테 돈 빌려가셨잖아요.
팀장
무슨 돈을 빌려 내가!
나라
(톤이 높아지면서) 빌려갔잖아요! 지난번에 나한테 빌려간 돈 삼만 원 달란 말야 이 자식아아아아아아!!!
씬50. 병원 입원실/밤
심전도모니터 파도 일정하게 진행되고 있다.
침상 보면, 나라 모, 여전히 의식 없는.. 은지가 보호자용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서 자고 있다.
나라
(가만 모친의 얼굴을 보다가)
엄마.. 엄마까지 이렇게 누워있으면 어떻게요.. 일어나 그만.. (어이없는 듯) 엄마, 나 회사에서 짤렸어.. 이 마당에..엄마가 절에 가서 부처님께 좀 빌어줘.. 우리 좀 봐달라고.. 엄마..
나라 모
(감고 있는 눈에 눈물이 흐른다.)
나라
(씨익 웃으며) 야, 우리 엄마 우네?
나라 모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라
(나라 모의 손을 잡으며) 말 다 알아듣네..
난 또 식물인간 같은 거 되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이제 울 엄마 수술만 받으면 되는 거네..
(눈물 닦아 주며) 엄마.. 울지 마..
내가 수술시켜드릴게 엄마.. 걱정하지 마..
은지
(듣고 있다가 몰래 눈물을 훔치는)
씬51. 인혁의 건물 앞/오후
나라가 건물 앞에 선다.
친구E
인혁이 알지? 부동산 개발 회사로 떼돈 벌었대. 동창들 찾아오면 돈도 꿔주고 그러나보더라.
아, 근데 너 참, 걔랑 안 친했지?
결심한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인혁이 막 안에서 비서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나오고 있다.
문을 열어주는 비서에게 뭔가 지시하고 있는 인혁.
나라
(다가가서) 인혁아.
인혁
(본다.) 어? 이게 누구야.. 금나라 아냐?
야 오랜만이다. 어쩐 일이야?
나라
(어깨를 툭 치며) 잘 지냈냐?
인혁
정신없지 뭐,, (김비서에게) 오늘은 내가 운전할게. 김비서는 들어가. (나라에게) 근데 여긴 어쩐 일이야?
나라
어, 나 너 만나러 왔어.
인혁
나? (차로 가면서) 나 지금 약속 있는데, 무슨 일인데?
나라
할 말이 있어서.. 잠깐이면 돼.
인혁
나중에 보자. 나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어서 그래.. (차에 탄다.)
나라
(차창에 매달리며) 어디로 가는데? 가면서 얘기 할게.
인혁
강남이야. 나중에 봐.
출발한 인혁의 차.
나라
(인혁의 차를 따라가며) 강남 어딘데!
씬52. 레스토랑/밤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세련된 분위기의 고급 레스토랑,
한적한 자리에 주경, 인혁, 지점장이 모여 저녁을 먹고 있다.
양식메뉴에 와인요리.
지점장
(둘러보며) 와.. 이런 데가 있었네...
인혁
분위기 괜찮죠?
지점장
네.
인혁
여기가 회원제로 운영해서 그런지 조용하고 괜찮아요. 어때요 주경씨. (와인을 따라주면)
주경
네.. 좋네요.. (인혁이 따라준 와인을 쭉 들이키고는) 맛있네.
인혁
(미소)
지점장
(눈치 주는데)
주경
(뭐 어떠냐는 듯이 싱긋 웃어 보인다.)
인혁
.. 주경씨.. 남자친구 있어요?
주경
.. 있습니다.
인혁
누군지 좋겠네.. 주경씨 혹시 남자친구 한 명 더 둘 생각, (싱긋 웃으며) 없어요?
주경
제 남자친구한테 물어보고요.
인혁
하하하.. 정말 재밌는 아가씨네..
(지점장에게) 그렇죠? 서주경씨랑 같이 있으니까 오랜만에 웃게 되네요.
지점장
아 예.. (힐끗 눈치를 보고는 일어서며)
저기.. 잠깐..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인혁
(일부러) 그냥 여기서 하셔도 되는데.. 천천히 오세요.
주경
.. (인상 쓰는/일부러 피해주는 것이 짜증난다.)
인혁
(주경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며) 많이 드세요.
주경
.. 네.
씬53. 동, 레스토랑 앞/밤
왔다갔다, 서성이고 있는 나라, 초조한 표정으로 일식집 문을 바라본다.
씬54. 동, 내부/밤
인혁이 와인을 들이 키고 있다. 이미 거하게 취한 상태.
주경
(다시 따라주며) 지점장님께서 도망가셨으니까, 이건 지점장님 몫.
인혁
(쭉 마시고는) 주경씨도 한잔 해야죠.
주경
아, 네. (받으며) 와인도 쭉쭉 마시니까 재밌죠.
인혁
네.
주경, 인혁이 따라준 와인을 쭉 들이키고는 옆에 있는 잔에 확, 뱉는다.
주경
(엄살) 아, 와인에 뭐가 들어갔어요.
인혁
그랬어요?
주경
(인혁의 잔에 다시 따라주며) 벌주에요.
인혁
벌주? 마시죠 뭐. (쭉 마신다.)
주경
(얼른 다시 따라주며) 술 쎄시네요.
인혁
(잠시 보다가) 주경씨. 내가 얼른 취했으면 좋겠어요?
주경
네?
인혁
내가 겁나요?
주경
아뇨. 저 겁나는 거 별로 없는데요?
인혁
(싱긋 웃으며) 저 이상한 놈 아니에요. 이상한 오해 안하셨으면 해서요.
주경
!
인혁
근데 주경씨, 정말 씩씩하고 귀엽네요.
주경
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히죽) ..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주경, 슬그머니 가방을 들고 나온다.
씬55. 동, 레스토랑 앞 일각/밤
나라, 작은 패트 병에 들어있는 소주를 들이키며 앉아있다.
순간 어디선가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나라 앞으로 굴러온다.
나라
!
굴러온 동전을 얼른 발로 밟는 나라.
땅을 보며 다가오는 주경, 나라 부근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는다.
나라
(보고 있는)
주경
저기요, 이쪽으로 오백 원 짜리 동전 하나 굴러오지 않았어요?
나라
! (동전을 밟고 있는 발을 보는)
주경
못 보셨어요?
나라
.. 네. 못 봤는데요.
주경
아 네.. (바닥을 살펴보며 돈을 찾는다.)
돈 찾는 주경을 보는 나라, 점점 난감해진다.
나라
(발을 움직이지 못하겠고)
주경
아 어디로 갔지.. (두리번거리며 찾는)
나라
......
주경
저기.. 죄송한데요.. 오백 원 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나라
네?
주경
제가.. 오늘 지갑을 안가지고 와서.. 차비가 모자라서 그래요.. 제가 술 먹다가 급히 빠져 나왔거든요.
나라
...... (시선 슬쩍 동전을 밟고 있는 발로 간다.)
주경
오백 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나라
...... (발을 뗄까 말까?)
주경
좀 안될까요?
나라
아가씨를 뭘 믿고 오백 원을 빌려줘요?
주경
(살짝 기분 상해서) 명함이라도 드려요?
나라
저 오백 원 없어요.
주경
(어이없다.) 하긴 아무리 오백 원이라도
요즘 세상에 뭘 믿고 빌려 주겠어요..
세상 참 소신 있게 사시네요. 부자 되세요.
주경 가버린다. 나라, 가는 주경을 잠시 바라본다.
일식집에서 비틀거리며 나오는 인혁,
나라, 얼른 일어나면서 밟고 있던 오백원을 주머니에 넣으며 인혁에게 달려간다.
씬56. 동, 일각 후미진 곳/밤
인혁, 벽을 붙잡고 오바이트를 하고 있다.
나라
(다가가서 등을 두들겨주며)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냐?
인혁
(본다.) 어, 너 금나라? 너 여태 나 기다렸냐?
나라
어? 어.. 아니.. 막 볼일 보고 다시 오는 길이야.
인혁
(비죽이곤) 너 나한테 돈 빌리러 왔냐?
나라
!!
인혁
새끼.
나라
(굳어진다.)
인혁
너 증권회사 다닌다던데, 짤렸냐?
나라
그렇게 됐다.
인혁
윽! (세게 오바이트를 한다.)
나라
(얼른 등을 두들겨주며) 많이 마셨네..
인혁
돈이 좋긴 좋구나, 학교 다닐 땐 날 그렇게 무시하던 놈들이, 내가 돈 좀 벌었다고 하니까 그렇게들 찾아오더라고.. 새끼들.
나라
(굳은 표정으로 어금니를 문다.)
인혁
왜 자존심 상하냐?.
나라
......
인혁
야, 너 (오바이트를 한 걸 가리키며)
이거 먹을 수 있어? 그럼 내가 돈 빌려 줄게.
나라
!
인혁
킥킥.. 먹을 수 있어? 못 먹지?
나라
(치솟는다)
잠시 인혁을 보던 나라, 인혁이 오바이트 한 것을 손으로 한 움큼 집는다.
인혁
! (술이 확 깨는데)
나라
(그대로 움켜쥔 채로) 너 광어회 먹었구나.. 미안하다.. 내가 광어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거의 인혁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지며)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걸로 먹어주라. 응?
인혁
(완전히 굳어진)
씬57. 차연의 집 앞/밤
차연의 차가 다가와 멈춘다.
차연
(내리는데)
나라, 술에 취해 흔들거리며 벽에 기대 서있다.
나라
(뒤에서) 이차연.
차연
(반가운 얼굴로 다가가며) 웬일이야? 술 많이 마셨네.
나라
너한테 볼일 있는데,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못하겠어서.
차연
(미소) 미안하단 말 하려고?
나라
아니.
차연
그럼.
나라
.. 이차연. 니네 돈 좀 쓰자.
차연
!
집에서 나오던 우성, 안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다.
나라
세상이 그놈의 자존심만 가지고는 살 수 없더라.
차연
얼마든지 써. 이자는 안 받을게.
나라
아냐, 받아. 줄 거야.
차연
얼마나 줄 건데?
나라
남들 주는 것, 만큼은 못주고, 조금만 받아라. 눈꼽만큼만.
차연
알았어.
나라
담보는.. 너에 대한 내 마음.
차연
(환해지면서 나라를 안는다.)
나라
미안하다. 괜히 심술부려서.
차연
아 따뜻하다.
우성, 포옹하고 있는 두 사람을 가만 보고 서있다.
씬58. 차연의 집 내부/낮
차연과 봉여사 마주 앉아있다.
차연
할머니가 빚 좀 다 갚아주세요.
봉여사
난, 사채업자야. 담보 없이 그렇게 많은 돈 안내 줘.
차연
우리 결혼 할 사이에요.
봉여사
그놈, 우리 돈 보고 결혼하는 거 아니냐?
차연
빚 있는지 몰랐을 때, 결혼 약속했어요.
봉여사
.. 그 어미 병원비 정도는 그냥 주마.
차연
다 갚아주세요.
봉여사
한심한 것.
씬59. 한정식 집 앞/낮
봉여사의 차가 선다.
문 열어주는 기사, 안에서 봉여사 내린다.
씬60. 동, 내부 룸 /낮
들어오는 봉여사, 나라 앉아 있다가 일어선다.
마주 앉는 두 사람.
나라
...... (말이 없는데)
봉여사
(잠시 보다가 핸드백에서 돈을 꺼내 내놓는다.) 돈일세.
나라
(보는)
봉여사
적은 돈 아냐, 담보도 없이 이런 돈 빌려주는 거 쉽지 않아.
나라
.. 고맙습니다.
봉여사
돈이란 게 칼보다 더 무섭다는 거, 아나?
나라
.. 네 이번에 알았습니다.
봉여사
그럼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알겠구만.
나라
반드시 갚겠습니다. (집으려고 하는데)
봉여사
갚을 필요는 없어.
나라
(보면)
봉여사
대신 조건이 있네. 우리 손녀 만나지 말게.
나라
! (굳는다.)
봉여사
내 손녀를 사채 빚에 허덕이는 데로 보낼 수 없어.
나라
......
봉여사
어떻게 할 텐가, 이 돈을 받을 텐가?
아니면 우리 손녀를 만날 텐가?
나라
(일그러진다.)
봉여사
(보는)
나라
(돈 봉투를 보는)
봉여사
(그런 나라를 보는)
나라
......
봉여사
돈이야? 내 손녀야?
나라
..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봉여사
(보면)
나라
(비웃듯) 이제 보니 차연이가 할머니를 하나도 안 닮았군요. 제가 여자 하나는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일어나서 가버린다.)
봉여사
(흡족 해지는)
씬61 동, 한정식집 앞/낮
빠르게 걸어 나오는 나라, 화가 치민다.
나라
(불쾌한)
E 전화벨소리.
나라
(받는) 여보세요?
은지 F
(다급한) 오빠 어떻게..
나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씬62. 병원 복도/낮
은지가 울면서 전화를 하고 있다.
은지
오빠, 엄마 수술 안 받을꺼면 나가래..
우리 갈 데도 없잖아 오빠.. 엄마 어디로 모셔..
우리 엄마 어떻게 해.. 뭐라 그래 오빠..
아무리 사정해도 안된대...
씬63. 한정식 집 앞/낮
전화를 받고 있던 나라, 스르르 손을 놓는다.
나라
(입을 앙다무는)
안에서 막 봉여사가 나온다.
봉여사
아직 안갔구만.. (차를 막 타려는데)
나라
.. 저기, 할머님!
봉여사
(돌아보며) 왜, 할 말이 남았나?
나라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나라, 잠시 봉여사를 보고만 있다.
씬64. 동, 내부 룸/오후
인서트
<나 금나라는 돈을 받는 대신 다시는 이차연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하얀 종이에 친필로 쓴 각서 위에 나라가 지장을 찍고 있다.
봉여사
(싸늘하게) 자네 말대로 차연이는 나를 닮지 않아서 자네하고는 어울리지 않아.
나라
...... (굴욕적인)
봉여사
약속 지켜.
씬65. 거리/달리는 차안/오후
봉여사가 인상을 구기고 앉아있다.
봉여사
(전화를 건다.) 마사장?
씬66. 마동포 사무실/오후
마동포, 소파에 누운채 얼굴에 오이조각을 잔뜩 붙인채 전화를 받고 있다.
경리 아가씨, 미스 조가 마동포 얼굴에 오이팩을 붙여주고 있다.
(미스 조는 동대문표 짧은 치마에 신촌표 유행하는 퍼머머리에 유행 메이크업을 한 20대 초반의 글래머 아가씨. 어딘지 짝퉁 스타일이지만 싸가지가 없어 보이기보다는 푼수 끼 있고 맹해 보이는 타입이다)
마동포
이거 봉여사님께서 전화를 다 주시고, 무슨 일이십니까? (반색하며 몸을 벌떡 일으키며) 그래요? (그 바람에 미스조가 놀라고 마동포 얼굴에 덕지덕지 붙인 오이팩들이 우수수 떨어지지만 아랑곳 않고) ..아이고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여사님!
마동포, 전화를 끊고 얼굴에 희색이 돌며 ‘네깟놈이 뛰어봐야 벼룩이지’하는 표정으로 얼굴에 붙인 오이를 떼어 우적우적 씹는다.
씬67. 한정식집 내부 룸/오후
나라, 봉여사가 두고 간 돈 봉투를 무겁게 바라보며 앉아있다.
봉투 안에서 돈다발을 꺼내서 세기 시작한다. 10만 원 권 수표들이다.
나라
(손에 침을 묻혀가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다시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다시 센다) 하나 둘 넷 다섯.. 셋.. 넷.. 다섯..
(눈이 점점 붉어진다.)
씬68. 병원 일층 접수대/오후
나라, 돈을 세고 있다.
은지
오빠.. 이 돈 어디서 났어?
나라
팔 한 짝 떼어주고 받았어.
은지
어?
나라
내 팔 한 짝 떼어준 대가라고..
(직원에게 내밀며) 여깄습니다. 맞나 세보세요.
순간, 직원이 받으려는 돈을 낚아채는 손.
나라
(놀라서 보면)
수표와 전태다.
나라
뭐야. (어이가 없는데)
수표
아휴, 재주도 좋아, 금방 이 많은 돈이 생기고.. 고마워.
나라
(얼른 다시 낚아채려고 하지만)
수표, 잽싸게 안에 넣고는 히죽 웃고는 가버린다.
나라
(멍한)
은지
(울먹이며) 야, 니들 거기 안 서!
은지 수표와 전태를 쫓아가서 매달린다.
은지
내놔, 우리 돈 내 놔아~
수표
(귀찮다/뿌리치고 가버리는)
나라
(넋이 나간 듯 멍히 보고만 있는)
은지
오빠.. 오빠 뭐해, 저 사람들 가잖아~
나라
...... (기막혀 할 말이 없다.)
씬69. 차연의 방/오후
차연, 나라의 친필 각서를 보고 있다.
<나 금나라는 돈을 받는 대신 다시는 이차연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차연
(가만 보는)
봉여사
그놈이 그런 놈이야. 그놈이 돈이 아니라,
너를 택한다고 했으면 그 사채 빚 내가 갚아 주려고 했다. 그놈을 담보로.
차연, 각서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말없이 나간다.
씬70. 병원 입원실 앞/오후
차연 걸어가고 있는.. 막 병실에서 나오는 나라와 마주친다.
나라
!
차연
(엷게 웃는)
나라
(애써 무표정한)
차연
괜찮아.. 그 맘 진짜 아니라는 거.. 알아..
얼마나 미안하고 속상할까.. 걱정 돼서 왔어.. 괜찮다고 말하려고..
나라
.. (외면하고 있는)
차연
(나라의 손을 잡으며) 어머니 괜찮으셔?
어머니 좀 뵙고 갈게.
나라
(손을 빼며) 진심이야.
차연
(본다)
나라
너 보다 돈이 더 중했어.. 진심이야.
차연
(미소 잃지 않고) 왜 그래.
나라
(자조적인) 나도 몰랐어, 내가 그런 놈 인줄..
근데 눈앞에 큰 돈이 보이니까 홱가닥 하더라고.. 내가 참 여자하나는 잘 꼬셨어, 안 그래?
순간, 돌아가는 나라의 얼굴. 차연이 뺨을 때렸다.
차연
(원망의) 그렇게.. 말하면 속이 편해?
헤어지는 게 쉽겠어?
나라
!
차연
애쓰지 마. 안 매달릴 거니까. (돌아서는데)
나라
... 차연아.
차연, 멈칫한다.
차연
(기대에 차서 돌아보는데)
나라
.. 너 지금.. 돈 좀 있니?
차연
(일순 무너지는)
슬퍼지는 차연. 지갑에서 있는 데로 돈을 꺼내서 나라에게 던지듯이 주고는 돌아선다.
바닥에 흩어지는 돈들.
차연, 눈물을 흘리며 빠르게 걸어간다.
나라, 바닥에 흩어진 돈을 줍기 시작한다.
머리 날아가는 만원 한 장을 무릎으로 걸어가서 줍는 나라.
씬71. 병원 내부 일각/오후
움켜쥔 돈을 접수대에 주는 나라.
직원
(보면)
나라
아까 못낸 수술빕니다.
(돈 받을 생각 않고 멍한 직원에게 버럭 소리치는) 얼른 받아요, 또 뺏기기 전에!
직원
(얼른 받는데)
E 나라의 전화벨 소리.
나라
(받으며) 여보세요.
형사 F
여기 종로경찰선데요. 금나라씨죠?
나라
네.
형사 F
실종신고 하셨던 금상수씨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나라
.. 네?
씬72. 영안실/오후
나라, 다가온다. 침대에 누워 하얀 시트에 덮여있는 나라 부.
나라
(다가가는)
시트를 연다. 아버지다. 왼손에 동맥을 끊은 흔적이 보인다.
나라
...... (충격으로 멍해지는데)
형사
이걸로 동맥을 끊으신 거 같습니다.
나라
(보면)
날카롭게 갈린 신용카드가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아직도 피가 흥건히 묻어있다.
나라
(어이가 없는데)
형사
여기.. (하얀 편지 봉투를 주며) 유서가 나왔습니다.
나라
(받는)
인서트
<나라야 은지야 카드 빚 내지마라>
하얀 종이에 큰 글씨로 휘갈겨 쓴 유서.
잠시 유서를 바라보던 나라, 갑자기 픽, 하고 웃는다.
형사
? (보면)
나라
쿡쿡.. 우리 아버지 좀 봐.. 유서가 카드 빚 내지 마래.. 유서가.. 카드 빚내지 말라니.. (울컥하는 것을 참고 웃음을 섞어) 우리 아버지.. 진짜 막판에 위트 있으시네.. 그렇지 않아요 형사님?
형사
(짠한)
나라
쿡쿡쿡.. (유서를 손에 쥐고 나라 부를 바라보며 웃는지 우는지) 쿡쿡쿡..아버지 왜 이렇게 웃기세요 네? 쿡쿡쿡... 쿡쿡쿡...
씬73. 병원 입원실/오후
나라,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나라 모를 바라보고 있다.
나라
(잠시 바라보다가 허하게 남 얘기하듯)
엄마.. 아버지 죽었어..
산에서 동맥 끊고 자살하셨어..
엄마.. 우리 아버지가 원래 그렇게 독한 사람이었어?
신용 카드 있잖아.. 그걸 디립다 갈아가지고는.. 동맥을 끊었더라구.. 울아버지 갔어 한방에, 가버렸어.. 카드가 칼, 이 된 거지 뭐..
엄마.. 이제 곧 수술 받을 거야.. 나랑 은지랑.. 아버지 장례 치루고 올게.. 이제 아버지 빼놓고 우리끼리 잘 살자 엄마.. 응?
심전도 모니터, 파장 물결이 고르지 않더니 삐, 하며 멈춘다.
달려오는 의사, 간호사들. 제세동기 가동 시킨다
200줄 하며 심폐소생을 시도한다. 모니터 플랫상태.
나라
!!!!!!! (기가 막히는데)
넋 나간 나라의 얼굴우로 300줄, 360줄,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심박동 모니터 삐 소리 내며 플랫 상태 변함없다.
씬74. 장레식 장 내부/낮
나라 부, 모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있다.
상주인 나라와 은지, 한곳에 앉아있는.. 조문객도 별로 없는 쓸쓸한 장례식.
나라
(멍히 생각에 빠져있는)
은지
.... (눈물이 마르지 않고 연신 줄줄 흘리는)
나라,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영석
(입구에 서 있다가) 형님!
씬75. 거리/낮
나라, 상복을 입은 채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다.
점점 걸음이 빨라진다. 거의 뛰듯이 걷는.. 어느 새 뛰고 있는 나라.
씬76. 절/낮
나라, 모친이 소원을 빌던 연못 속에서 망치로 불탑을 깨부수고 있다.
나라
(소리친다.) 야 이 새끼들아!
부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10년 넘도록 우리 엄마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량수전 공든 탑에
동전을 던지며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그 대가가 겨우 이거야?
겨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야! 부처님 있는 거 맞아? 부처고 나발이고 우리 엄마가 던진 돈 다 내놔,
내 놔! 다 내 놔! 우리 엄마가 던진 돈 다 내놔!
팍팍 부서지는 불상.
멀리서 스님들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다.
나라, 탑에 던진 동전을 주머니에 쓸어 담기 시작한다.
주머니에 가득 들어가는 동전, 주머니에서 다시 떨어지는 동전.
나라
(광기 서린)
나라, 계속 돈을 주머니에 담고, 또 담는다.
떨어지면 또 담고, 또 담는.. 계속해서 돈을 주워 담는 광기서린 나라의 모습에서 엔딩.